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내 손으로 뭔가 만드는 데 재미를 들렸다.
계기는 돈 때문이었다.
값비싼 선물을 하기에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고 가진 거라곤 시간과 손재주. 하여, 집에 널린 재료로 생강쿠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거기에 이어 유럽식 발효빵을 두어 차례, 수고스러운 밤조림에 이어 오늘은 맥북이를 위해 손수 옷까지 지어주었다.
수제품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가감해 보면 그다지 경제적인 이득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쿠키나 빵을 굽는 데 들어가는 재료와 오븐을 돌리는 데 쓰이는 전기, 노트북 파우치를 만들기 위해 들인 시간... 돈으로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만드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재미와 그 결과물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굉장하다.
직접 빵을 만들면, 사르르 녹아내리는 버터 향기를 맡으면서 바삭하고도 쫄깃한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무엇이 들어가고 들어가지 않았는지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아직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입맛에 맞게 다양한 첨가물을 집어넣은 빵이나 피자 도우, 난 등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저 멀리 '맛집'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 다음은 빵을 만드는 자세한 레시피가 결코 아닙니다.
20150129_선빵.
재료 : 밀가루(무게 재지 않고 반죽에 계속 첨가했음), 이스트(독일산 Dr.Oetker Hefe 한 봉지), 물, 소금 약간.
전날밤 인터넷에서 빵 만드는 동영상과 블로그 글을 수십개 찾아봤다. (검색어: easy bread recipe no knead baguette)
의도한 건 아니지만, 레시피를 몇 개 섞어서 쓰게 되었다. 원래는 미국 PBS에서 방송한 No-Knead(손으로 치대지 않고 반죽을 그대로 굽는 것) 스타일로 하려고 밤새도록 이스트+물+설탕+소금+밀가루들이 맘껏 뛰놀게 한 것인데, 반죽을 보더니 손이 먼저 반응했다. (물론 깨끗이 씻고) 그간 쌓인 원인모를 스트레스를 쏟아부었다.
밀가루 양이 확실치 않은데, 또 다른 레시피에서 본 것 처럼 손에 달라붙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조금씩 뿌려가며 반죽을 했다. 1차로 부풀게 둔 뒤 바람을 빼고 또 한번 과정을 거친 후 동그랗게 말아 작은 가마솥에 넣었다.
외국에서는 무거운 뚜껑이 있는 커다란 무쇠 냄비를 Dutch Oven이라고 부르던데, 우리집엔 오븐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와 재질의 냄비가 그것 뿐이었고, 더치 오븐이랑 똑같은, 아니,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기에 망설이지 않고 사용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가 느껴져'
엄마가 그랬다.
진짜라고 믿는다. 약간 과장이 섞여있긴 하지만, 난 엄마의 말은 무조건 믿는다. 다 고분고분 따르지는 않지만.
가마솥에 넣어서 그런지 겉이 구수한 누룽지 같았다.
이 날은, 커다란 빵 두 덩이를 만들어서 먹었다.
20150202_두번째 빵

재료 : 똑같음. 아, 설탕 대신 꿀로 효모파티를 열어주었고, 소금을 좀 더 넣었다.
확실히 독일의 맛이 났다. 이건 진짜 제대로 Brötchen이다. 한남슈퍼마켓 '헨젤과 그레텔'에 들러 Lachsschinken과 Gouda 치즈를 사서 빵에 넣어 먹었다. 독일의 맛이다. 맞다.
그런데 또 저 바게뜨는 프랑스 맛이었다. 얊게 잘라 토스트기에 구워 먹으니 쫄깃하면서 바삭한 식빵 같기도 했다. 들어간 재료와 시간은 똑같은데 모양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다니. 시각적인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20150208_치아바타
그동안 효모가 없어서 빵을 못 만들고 있었다. 이 전에는 유통기한이 2010년으로 되어있는 독일산 Dr.Oetker Hefe로 빵을 만들었는데 다 써버렸다. 선빵을 만들기 전날, 나는 생강쿠키를 만들다가 제과제빵용품 박스에 넣어뒀던 이 Hefe를 발견했고, 이들의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 설탕물에 담궈두었고, 몇분 뒤 부글부글 파티를 벌이는 효모녀석들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포기하는 심정으로 밀가루를 들이부었던 것이었다. (유통기한 5년 뒤인데 정말 너무도 멀쩡하게 살아있어서 놀랐다) 한 번은 물이 너무 뜨거웠는지 효모가 무반응. 여하튼 몇 년간 잠자고 있던 Hefe 세 봉지를 몇 주만에 다 써버렸다.
어제(7일)는 예기치 않게 동대문 부근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게 되었는데, 간 김에 동대문 종합시장에 가서 펠트 재료를 사고, 방산시장까지 걸어가서 프랑스산 르샤프 봉지 10개 정도를 사왔다. 물이 너무 뜨겁지 않도록 끓인 물과 정수기 물을 섞어서 꿀을 풀어주고 효모를 넣었는데 반응이 느렸다. 일찍 자려고 했는데, 계속 미적거리는 거다.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넘어갔는데 여전히 얘들은 미적미적. 파티를 벌이란 말이다! 아...너무 졸렸다. 그제서야 봉지 뒷면을 읽어보니 밀가루와 100:1 비율로 넣으라고 써 있다. 그런데 얘는 3g. 밀가루를 대략 300그람 정도를 털어넣고 포기하는 심정으로 대충 휘저어주었다.
8일 아침, 기분이 구렸다. 물이 많았는지 표면에만 약간 부글대고 있었다. 물을 조금 덜어내고 밀가루를 적당히 넣어 말랑한 반죽을 했다. 커다란 케이크 용 실리콘 틀에 옮겨놓고 고무주걱으로 반죽을 푹푹 찌르고 굴리고 괴롭혔다. 아무런 모양도 잡지 않고, 올리브 오일이고 계란이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반죽이 지저분하게 묻어있는 채로 실리콘 틀 그대로 오븐에 넣어 예열을 시켰다. 부풀면 모양을 잡아줄까 했더니 그대로 겉이 굳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대로 25분정도 구웠다.

아귀...같다.

얇지만 확실히 딱딱하게 겉이 굳어 있으니 안에 있는 수분이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 오레가노 가루를 뿌려 찍어 먹었다. 엄마한테 '치아바타'라고 소개했다. 치아바타는 이탈리아어로 '슬리퍼'라는 뜻이라고 하던데, 나한테는 어감이 폭력적인 부분이 있다. 이리저리 치이고, battered된 녀석.
미안한데, 너 좀 맛있었다.
반죽이란 녀석은 신기하게도 괴롭힐수록 맛있다. 내 짜증과 괴롭힘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이렇게 맛있는 빵이 되다니. 미안하고맙다. 앞으로 빵 만들기로 내 온 스트레스를 풀어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