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틀에 팽팽하게 고정시켜둔 천에 글줄과 음악줄이 바삐 오가며 그림을 그려나간다. 바깥의 여백이 더해지면 더 아름다우리. 

(가야십이지곡을 보고 왔더니, 말투가...)

한 마디로, 무대가 좁다. 한계 내에서 표현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날개가 꾹꾹 눌려 접혀있는 새 같아서 안타까웠다. 더 큰 무대에서 만날 날을 기대한다.


창작자들은 관객에게 쥐어줄 실타래를 풀어내는 리듬을 잘 짠 것 같다. 캐릭터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 들 때마다 노래가 있었다. 신탁을 받아 길을 떠나는 우륵의 내면적인 갈등을 노래로 풀지 않았더라면 우륵이라는 인물에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관객은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며 관극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했을 때 그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이야기를 따라가기 거부하고 뒤에 남는다. 게다가 신이라던가 운명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나로서는 시작과 동시에 물음표를 던져대기 바빴다. 하지만 노래가 나를 달래주었다. 결국 우륵은 나고, 내가 우륵이다. 나에게만 들리고 보이는 신탁. 신탁은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내린 운명, 굴레. 이 길을 가고 있는 나는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소리를 모으러 떠나는 여행'에서 단연 중요한 것은 소리이다. 열두줄 금을 그저 소품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로써 극 안에서 활약하게 한 것, 그리고 니문과 소율을 구하고 사다함의 칼을 이긴 그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은 것은 창작자의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본 다른 친구는 그 부분이 공허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가야금 소리가 귀를 통해 듣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무언가 빼먹은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니문도, 소율도, 심지어 사다함도 독백의 형식을 빌어 '그 음악의 힘'을 증언한다. 머리로 이해하기는 했지만 마음으로 느끼지는 못했다. 그럴 여유를 주지 않은 채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출이 아쉬웠다. 작은 무대에 적은 예산, 인원과 소품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알지만, 인물들의 감정선까지 전부 수신호로 운영한다는 느낌이었다. 깔끔하게 담긴 일본식 도시락 세트에, 조금씩 간이 덜 되어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나는 더 강렬한 맛을 원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배우에게 사이를 연기할 여유를 주면 어떨지. 


본 날에 바로 썼지만 새벽까지 이어지는 생각에 지우고 또 지우고... 그러다가 사실이 기억속에서 뒤틀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느낌은 마음자리에 은은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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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쯔가 본 :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  (0) 2012.01.05
칼바람을 뚫고 보러 가길 잘 했다.

연극 <극적인 하룻밤> 이후 두 번째로 찾은 연우소극장. 연극을 볼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는 뮤지컬 라이브 연주팀이(소극장인데도 라이브!) 자리해서 그런지 무대가 굉장히 좁게 느껴졌다. 게다가 내 앞뒤양옆으로 서로 너무나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던 단체관람객들 사이에 앉아 있자니 자리도 어색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극이 시작되자 그 답답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혁명의 불이 타오르던 격동기, 18세기 프랑스와 19세기 조선을 넘나드는 복잡하고도 묵직한 이야기였지만 호흡이 빨라서 금방 빠져들었다. 무대가 점점 커졌다.세 명의 배우가 여섯 명을 연기하고, 소품도 무대장치도 의상도 어느하나 화려하지 않았지만 어느 장면에서 세느강이, 또 그 강이 언제 한강으로 바뀌어 흐르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드럼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현대적인 안무로 표현한 레옹과 피에르의 듀엘링 장면이었다. 작가가 '이 장면엔 안무를 이용해야지' 하고 쓴 것일까? 아님 연출가가 고안해서 안무가에게 의뢰한걸까? 그런 게 참 궁금하다.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을 보며연출가는 공연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모 연출가의 무개념 트윗으로 인해 뮤지컬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쓰라리게 했던 일명 'ㅆㄹㅁ 사태'로 얼룩졌던 오늘, 아니 어제의 타임라인, 그 연출가도 잠시 잊었던 거라 생각해야겠지. 관객도 공연을 이루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대에게 빵X밥O을 주는 사람이다!)

토달기 : 예전에 (다른 작가이지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볼 때도 가사가 입에 맞지 않아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오늘 <라 레볼뤼시옹>을 보고 나니 그런 것이 혹 소격효과를 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음표 안에 우겨넣은 다섯음절을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으니까;

아...양 옆에서 눈물 쏟는 관객들 사이에 똘망똘망하게 눈을 빛내고 앉아 '공부'하고있는 내 자신이 참...아직은 공연을 좀 즐겨도 되지 않나?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보고 모든 공연에 열광했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함께 웃고 울고 노래할 수 있는, 그런 관객의 자세는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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