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nne Gordon 저서 [Art Isn’t Easy] (1990) 중
번역 : 서지은 (jieun.suh11@gmail.com)
뮤지컬, 노래를 멈추고 제 목소리를 찾다
: 일요일에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닷은 공원 벤치에 앉아 문법책을 공부하려 애쓴다. 이 빨간 문법책은 조지의 지적 수준에 가까워지겠다는 상징으로, 궁극적으로는 조지의 복잡한 천재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스케치를 하는 조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다 한다. 특정한 인물(생물)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종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음모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느긋하게 앉아있다. 그러다가 조지는 뱃사람의 개에 초점을 맞춰본다. 닷이 거울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던 것처럼 조지는 개를 바라본다:
Dot If my legs were longer, 다리가 길었다면 If my bust was smaller. 가슴이 작았다면 If my hands were graceful 손이 우아하다면 If my waist was thinner. 허리가 얇았다면 If my hips were flatter. 엉덩이가 좀 납작하다면 If my voice was warm… 목소리가 따스했다면 |
George If the head was smaller 머리가 작다면 If the tail were longer… 꼬리가 길다면 If he faced the water…. 물가를 내다봤다면 If the paws were hidden…발이 보이지 않았다면 If the neck was darker …목이 더 짙은 색이었다면 If the back was curved… 등이 굽었다면 |
자신이 만든 세상 안으로 들어가며 개와 하나가 되고 그 개의 생각을 목소리로 나타내는 장면에서, 손드하임은 예술가의 공감능력을 명곡(show stopper- 곡이 끝난 뒤 박수소리 때문에 극의 흐름이 멈출만큼 강렬한 곡)으로 재탄생시킨다. 조지는 개가 짖는 소리와 그의 삶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이용해 말장난을 하며 즐긴다.
Ruff! Ruff! 웡! 웡!
Thanks, the week has been 고마웡, 이번주는 특히
(Barks) (짖는다)
Rough! 힘들었엉!
개의 세상 역시, 그 세상을 구성하는 부분들로써 보여진다. 개의 시선을 반영하기 위해 표현도 영리하게 골라 사용했다:
Bits of pastry… 빵 쪼가리
(냄새 맡는다)
Piece of chicken … 닭 쪼가리
(냄새 맡는다)
Here’s a handkerchief 여기 손수건에
That somebody was sick in. 누가 토했나봐
There’s a thistle. 엉겅퀴다
That’s a shallot. 감이다 (샬롯은 원래는 양파같이 생긴 채소)
That’s a dripping 여기 떨어진건
From the loony with the palette. 저 괴짜가 (떨어뜨린) 물감이다
뱃사람의 개 옆에 응석받이 퍼그가 나타나 사교적인 인사를 나눈다. 둘은 서로 다른 각자의 삶에 대해 불평한다. 여기서는 이 개 두마리를 통해 인간의 계급 차이를 풍자하고 있다. 개들은 일요일에 경의를 표하며 첫 멜로디를 소개한다. 이들 뒤로 다른 인물들이 나타나 각자의 자유를 답사하는 모습이 부분부분 보여진다. 이는 손드하임이 이 뮤지컬에 사용한 인물 기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각 캐릭터는 불완전하다. 조지의 지각 속의 조각일 따름이다. 각 인물의 고민과 편견은 나타났다가 버려진다. 이 인물들이 공원에서 보내는 일요일의 즐거움을 함께 노래할 때에 이르러서야 조지가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그림으로 합쳐진다. 이 일요일은 완벽한 쇠라의 그림과 손드하임의 뮤지컬 안에서 그들이 영원히 견뎌내야 하는 일요일이다.
외눈박이 뱃사람은 자기 자신이 바로 사회의 아웃사이더이다. 예술가를 이해하면서도 그가 그림으로 그려낸 현실의 정당성을 거부한다. 뱃사람은 예술가가 원하는 것만 보기 때문에 결코 진실을 볼 수 없다며 비꼰다.
지금 대체 누굴 그리는거야? Who the hell you think you're drawing?
나? Me?
알지도 못하면서! You don't know me!
그래, 그림이나 그려. Go on drawing,
어차피 보고싶은것만 그리잖아 Since you're drawing only what you want to see,
누가 뭐래도 Anyway!
어디 마음대로 세상을 그려봐 Draw your wrong conclusion 1,
당신네 예술가들이 다 그렇잖아 All you artists do.
난 진실을 볼 뿐이야 I see what is true...
뱃사람의 단편적인 지각 개념은 조지의 화법과 일관되면서도, 반복되는 손드하임 테마를 반영한다. 손드하임은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특히 <태평양 서곡Pacific Overtures>의 “나무 위의 사람someone in a tree”라는 곡에서 ‘진실이란 여러가지 다른 관점들의 총합’이라는 의견을 탐구한다. 이러한 관점은 대체로 손드하임 작법의 기저를 이루는데 여기서도 창작자와 주인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케치를 마친 조지가 퇴장하고 다시 닷에게 관심이 집중된다. 손드하임은 서로 다른 리듬 패턴을 이용해 닷이 각 남자(조지와 루이)에게 느끼는 감정을 대비시킨다. 조지를 향한 닷의 갈망은 오래 끌면서 느린 음으로 표현되지만 루이와의 관계는 빠른 박자에 얹혀 보여진다. 손드하임의 다른 캐릭터들처럼 닷 역시 노래를 하면서 스스로를 설득시키려 애쓴다. 닷은 다정하고 단순한 제빵사 루이를 원하고 싶어한다.
모두 루이를 사랑해 Everybody loves Louis,
루이는 단순하고 친절해 Louis’ simple and kind.
모두 루이를 사랑해 Everybody loves Louis,
루이는 사랑할만해 Louis’ lovable.
통통튀는 리듬은 닷과 루이의 단순한 관계를 보여준다. 가사에서는 청아한 소리가 나는 ‘L’을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루이의 관능적인 면을 거의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며 부각시킨다. 거기에 은밀한 말장난이 더해지면서 닷이 이 건장한 제빵사로부터 느끼는 반복적인 기쁨을 알아볼 수 있다.
빵은, 조지. The bread, George.
그러니까 빵 말야, 조지. I mean the bread, George.
게다가 밤엔, 조지… And then in bed, George…
날 막 주물러 I mean he kneads me- (knead반죽하다/ need필요하다)
그러니까, 반죽처럼 말야, 조지. I mean like dough, George.
그러나 닷은 계속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노래 안에서 닷은 자신의 불안감을 드러내며 조지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결국 닷은 두 남자의 차이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루이들도 있고 And there are Louis’s
조지들도 있지. And there are Georges-
루이들- Well, Louis’s
그리고 조지. And George.
두 남자 사이에서 닷이 내리는 선택은 더 큰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인기있는(대중성을 지닌) 예술가와 예술, 혹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이다. 소수만 이해할 수 있으며 타협하지 않는 조지의 광적인 믿음은, 끈적하고 감상적인 루이의 ‘인기있는/대중적인popular’ 예술과 대비된다. 닷은 조지가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고 있고 그녀의 아픔은 반주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닷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루이의 크림빵을 한입 크게 베어물고선 떠나버린다.
조지는 이제서야 홀로 남겨진다. 공원에 앉아 그동안 그렸던 스케치들을 훑어본다. 그림을 넘겨보며 조지는 그림 속 인물이 각각 어떤 성격일지 상상해본다. 그는 작품에 집중하려 하지만 결국엔 상실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 그녀가 날 찾는군. 좋아. Yes, she looks for me - good.
나를 찾아와 왜 날 떠났는지 말해. Let her look for me to tell me why she left me -
그럴줄은 알고 있었지만. As I always knew she would.
이 괴로운 자기 성찰을 시작으로, 손드하임의 가장 사랑스러운 발라드곡 중 하나로 꼽히면서 가슴깊이 예술가의 기질을 탐험하는 곡이 시작된다. 극 초반에서 등장했던 모든 음악적 장치들이 이 곡에서 어우러진다. 닷이 떠난 것에 대한 슬픔은 길게 지속되면서 온화하게 떨리는 음으로 표현된다. 그녀의 사랑을 결코 유지할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조지의 상상속 세상을 이야기할 때마다 물처럼 흐르던 언더스코어가 리프라이즈된다. 자신의 상실에 대해 노래할때조차 조지는 강박적인 창작의 세계로 다시 빠져든다. 조지는 예술가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닷에 대한 갈망을, “하지만 누군가 할 수 있다면- But if anybody could…” 이라는 가사의 높고 깔끔한 음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갈망과 이를 받쳐주는 코드를 시작으로 조지는 놀라운 창조성과 예술가의 뼈아픈 기쁨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조지는 “나머지 세상을/ 창문 너머로 지켜보는” -봐야만 하는 예술가의 고립된 외로움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마치 신처럼 위엄있게 “하늘을 설계”한다고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즐거움도 암시하고 있다. 조지가 “모자를 끝내”야 한다는 강박적인 욕구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세부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예술가로서의 즐거움에) 대조되어 보여진다. 조지는 상충되는 삶의 요구들의 균형을 맞춰본다.
하늘을 꾸며 Mapping out a sky,
마음가는 대로 하늘을 그려 What you feel like, planning a sky,
목소리가 다가오면 What you feel when voices that come
창문 너머로부터 Through the window
가. Go
그 목소리들이 멀어져 사라질 때까지 Until they distance and die,
하늘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Until there's nothing but sky.
바깥 세상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마치 까치발을 짚은듯한 “창문Window”의 음가에 얹혀 무단침입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바로 “가go”로 푹 꺼지면서 “멀어져 사라지다distance and die”에서 흐려지고 예술가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완전한 고요로 돌아간다. 손드하임은 여기서 음악적 제안과 의미의 이상적인 결합 형태를 발견했다. 이 순간은 인물에게 결정적인 순간이다. 두 세계 사이에서 그는 인간의 감정 세계에 끌리는 마음보다는 반드시 일궈내야만 하는 예술세계에 대한 마음이 늘 우선일 거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반짝이는 “높이”에서 (“높이height”와 “빛light”이 이루는 각운은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자신을 끌어내려 감각적인 어둠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여자는 예술가의 감정적 자기고립을 참고 받아들여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유감스럽지만 인정한다.
이 곡에서는 조지의 점묘화법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작은 세밀한 부분들을 통해, 색색의 붓질을 통해, 단어 혹은 음을 통해, 예술가는 전체에 다가간다.
모자를 알고 Studying the hat,
모자의 세계에 들어가 Entering the world of the hat,
모자의 세계를 헤치고 Reaching through the world of the hat
마치 창문처럼 Like a window,
저기서 여기로 Back to this one from that.
인식/지각이라는 단위는 내적 창조성으로 통하는 창문의 역할을 하면서, 손드하임은 조심스레 이 두 세계의 균형을 잡는다. 작업실 창문 너머에서 손짓하는 세상은 사람의 온기와 우정의 세상이다. 다른쪽 창문 (조지에게 모자는 황홀한 상상의 세계로 가 닿을 수 있는 틈으로 인식할 수 있겠다) 은 주관적인 진리이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작곡가인 드뷔시와 라벨 풍의 반주를 통해 관객에게 조지의 모자 너머 세상이 환기된다. 유려한 반주가 반복되며 변조하는 것은 계속 변하며 어떤 형태로도 가둘 수 없는 예술작품의 진화를 표현하고 있다.
조지의 포부를 이야기할 때 손드하임이 사용하는 동사 - “연구하다”, “들어가다”, “도달하다”는 완벽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을 떠올리게 한다. 애인을 바라볼때조차 그는 사람과의 관계에 전념하기보다는 자신의 예술 세계로 빠져든다.
얼굴을 연구하고 Studying a face,
그러기 위해 한 발짝 물러나지 Stepping back to look at a face
사이엔 공간이 생기지, 창문처럼 Leaves a little space in the way like a window,
하지만 보는 것은 But to see-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야. It’s the only way to see.
조지는 상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은 결코 사람과의 관계에 온 마음을 쏟을 수 없을 것임을 깨닫는다. 조지에게 가장 시급한 욕구는 인간 이외의 세상에 있고 그 충동은 결코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기에.
네가 사랑하던 여인이 떠나면 And when the woman that you wanted goes,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수 있겠지 You can say to yourself, “well, I give what I give.”
하지만 너를 기다려주지 않을 여인은 알고 있지But the woman who won't wait for you knows
네가 어떻게 살아가더라도 That, however you live,
너의 맘 한 구석에는 언제나 There is a part of you always standing by,
하늘을 설계하고 Mapping out the sky,
모자를 끝내고 Finishing a hat…
모자를 시작하고 Starting on a hat…
끝낼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Finishing a hat…
만족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되자 조지는 거의 어린아이가 된것처럼 기뻐하며 노래한다. “봐, 내가 모자를 만들었어look, I made a hat…/ 원래 없었던 곳에where are there never was a hat…" 조지는 공원에 홀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 노래를 들어줄 이는 그림의 대상인 강아지 뿐이다.
트럼펫 소리가 들리고, 다른 인물들이 공원에 불려들어온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으며 그림 작업이 진척되고 있고 다양한 관계들이 더 복잡하게 얼키고설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긴장감과 악의도 느껴진다. 캐릭터들은 자신의 주제곡 조각을 부르며, 서로를 경계하며 빙빙 도는 닷과 조지를 중심으로 분극화된다. 마침내 닷은 도전적으로 조지를 마주하고, 허리받이를 돌려 임신한 모습으로 분한다.
장면은 다시 작업실로 바뀐다. 두 연인의 결정적인 언쟁 장면을 연출할 곳이다. 닷의 사랑을 요구할 권리는 없지만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화가 잔뜩 난 조지는 닷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초상화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한다. 조지는 닷에게 자신을 추억할 거리는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로 충분할 거라고 주장한다.
줄스와 이본이 도착하면서 이들의 말싸움은 잠시 방해를 받는다. 남자들이 조지의 그림을 논할 때, 이본은 닷에게 질투를 느꼈던 것을 고백한다. 이본은 닷이 조지의 영감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아보지만 닷은 자신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줄 사람이 아니라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한다. 조지는 자신의 새로운 화법이 가지는 의의를 완고한 줄스에게 납득시키려 애쓴다. 여기서 조지와 손드하임의 방식이 비슷한 점을 다시한번 찾아볼 수 있다. 줄스는 조지의 그림에서 인물의 개성이 부족하다고 불평한다. “얼굴을 알아볼수조차 없잖아”. 손드하임 역시 이러한 방식을 차용했다. 캔버스와 뮤지컬 무대를 차지하는 캐릭터들은 사실주의 작품에서와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기본적인 것들은 암시되어 있지만 그들의 열정은 덧없다. 손드하임의 작품에서 캐릭터들이 늘 이렇지는 않다. 작품이 개발되던 Playwrights Horizons에서의 워크샵 단계에서는 조지의 그림 속 인물들의 사연도 더 풍성했다. 라파인은 불협화음을 내는 현실적 존재들과 마지막 자세의 고요함이 대조를 이루길 바랐다. 그러나 관객은 곁가지 사연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중심 인물인 조지와 닷의 사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둘은 복잡한 심리로 얽혀있지만 다른 인물들은 캔버스로 녹아들었을 때에만 그림의 구성요소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손드하임이 캐릭터와 창작자를 분리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조지와 줄스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극작가인 라파인이 쓴 것이라고 부러 얘기하고 있기는 하나 조지가 무언가 독보적인 것을 만들겠다는 강박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에서 손드하임 자신의 좌절감과 믿음이 드러나고 있다. 손드하임에게 지배적인 강박은 늘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 그리고 각 뮤지컬에 맞는 형태를 찾아주는 것이었다. 1막과 2막의 주인공들에게도 이 욕망이 있고, 이는 1막과 2막을 주제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20170809. to be continued
- 직역은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내봐’-여기선 draw가 ‘그리다’가 아닌 ‘이끌어내다’라는 뜻이고, draw라는 동사를 중의적으로 쓰기 위한 장치 [본문으로]
'Translated by shaz'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is Podcast has Fleas - Script (3) | 2019.03.17 |
---|---|
뮤지컬, 노래를 멈추고 제 목소리를 찾다 02 (0) | 2017.07.11 |
뮤지컬, 노래를 멈추고 제 목소리를 찾다 01 (0) | 2017.06.27 |
[기사] 새롭게 들어보는 <숲속으로>: 오프 브로드웨이, 새로운 소리의 탄생기 (0) | 2015.02.10 |
An enlightening/controversial poetry dedicated to the victims of the Tragedy of Sewol (0) | 2014.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