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nne Gordon 저서 [Art Isn’t Easy] (1990) 

번역 : 서지은 (jieun.suh11@gmail.com)




뮤지컬노래를 멈추고  목소리를 찾다
: 일요일에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닷은 공원 벤치에 앉아 문법책을 공부하려 애쓴다. 빨간 문법책은 조지의 지적 수준에 가까워지겠다는 상징으로, 궁극적으로는 조지의 복잡한 천재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스케치를 하는 조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다 한다. 특정한 인물(생물) 생각을 표현하거나, 종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음모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느긋하게 앉아있다. 그러다가 조지는 뱃사람의 개에 초점을 맞춰본다. 닷이 거울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던 것처럼 조지는 개를 바라본다: 


Dot 

If my legs were longer, 다리가 길었다면

If my bust was smaller. 가슴이 작았다면

If my hands were graceful 손이 우아하다면

If my waist was thinner. 허리가 얇았다면

If my hips were flatter. 엉덩이가 납작하다면

If my voice was warm… 목소리가 따스했다면

George

If the head was smaller 머리가 작다면

If the tail were longer… 꼬리가 길다면

If he faced the water…. 물가를 내다봤다면

If the paws were hidden…발이 보이지 않았다면

If the neck was darker …목이 짙은 색이었다면

If the back was curved… 등이 굽었다면


자신이 만든 세상 안으로 들어가며 개와 하나가 되고 개의 생각을 목소리로 나타내는 장면에서, 손드하임은 예술가의 공감능력을 명곡(show stopper- 곡이 끝난 박수소리 때문에 극의 흐름이 멈출만큼 강렬한 )으로 재탄생시킨다. 조지는 개가 짖는 소리와 그의 삶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이용해 말장난을 하며 즐긴다. 


Ruff! Ruff! ! !

Thanks, the week has been 고마웡, 이번주는 특히

(Barks) (짖는다)

Rough! 힘들었엉!


개의 세상 역시, 세상을 구성하는 부분들로써 보여진다. 개의 시선을 반영하기 위해 표현도 영리하게 골라 사용했다: 


Bits of pastry… 쪼가리

(냄새 맡는다)

Piece of chicken … 쪼가리

(냄새 맡는다)

Here’s a handkerchief 여기 손수건에

That somebody was sick in. 누가 토했나봐

There’s a thistle. 엉겅퀴다

That’s a shallot. 감이다 (샬롯은 원래는 양파같이 생긴 채소)

That’s a dripping 여기 떨어진건

From the loony with the palette. 괴짜가 (떨어뜨린) 물감이다


뱃사람의 옆에 응석받이 퍼그가 나타나 사교적인 인사를 나눈다. 둘은 서로 다른 각자의 삶에 대해 불평한다. 여기서는 두마리를 통해 인간의 계급 차이를 풍자하고 있다. 개들은 일요일에 경의를 표하며 멜로디를 소개한다. 이들 뒤로 다른 인물들이 나타나 각자의 자유를 답사하는 모습이 부분부분 보여진다. 이는 손드하임이 뮤지컬에 사용한 인물 기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캐릭터는 불완전하다. 조지의 지각 속의 조각일 따름이다. 인물의 고민과 편견은 나타났다가 버려진다. 인물들이 공원에서 보내는 일요일의 즐거움을 함께 노래할 때에 이르러서야 조지가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그림으로 합쳐진다. 일요일은 완벽한 쇠라의 그림과 손드하임의 뮤지컬 안에서 그들이 영원히 견뎌내야 하는 일요일이다. 

외눈박이 뱃사람은 자기 자신이 바로 사회의 아웃사이더이다. 예술가를 이해하면서도 그가 그림으로 그려낸 현실의 정당성을 거부한다. 뱃사람은 예술가가 원하는 것만 보기 때문에 결코 진실을 없다며 비꼰다.  


지금 대체 누굴 그리는거야? Who the hell you think you're drawing?

? Me?

알지도 못하면서! You don't know me!

그래, 그림이나 그려. Go on drawing,

어차피 보고싶은것만 그리잖아 Since you're drawing only what you want to see,

누가 뭐래도 Anyway!

어디 마음대로 세상을 그려봐 Draw your wrong conclusion[각주:1],

당신네 예술가들이 그렇잖아 All you artists do. 

진실을 뿐이야 I see what is true... 


뱃사람의 단편적인 지각 개념은 조지의 화법과 일관되면서도, 반복되는 손드하임 테마를 반영한다. 손드하임은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특히 <태평양 서곡Pacific Overtures>나무 위의 사람someone in a tree”라는 곡에서진실이란 여러가지 다른 관점들의 총합이라는 의견을 탐구한다. 이러한 관점은 대체로 손드하임 작법의 기저를 이루는데 여기서도 창작자와 주인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케치를 마친 조지가 퇴장하고 다시 닷에게 관심이 집중된다. 손드하임은 서로 다른 리듬 패턴을 이용해 닷이 남자(조지와 루이)에게 느끼는 감정을 대비시킨다. 조지를 향한 닷의 갈망은 오래 끌면서 느린 음으로 표현되지만 루이와의 관계는 빠른 박자에 얹혀 보여진다. 손드하임의 다른 캐릭터들처럼 역시 노래를 하면서 스스로를 설득시키려 애쓴다. 닷은 다정하고  단순한 제빵사 루이를 원하고 싶어한다. 


모두 루이를 사랑해 Everybody loves Louis,

루이는 단순하고 친절해 Louis’ simple and kind.

모두 루이를 사랑해 Everybody loves Louis,

루이는 사랑할만해 Louis’ lovable.


통통튀는 리듬은 닷과 루이의 단순한 관계를 보여준다. 가사에서는 청아한 소리가 나는 ‘L’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루이의 관능적인 면을 거의 만질 있을 같은 느낌을 주며 부각시킨다. 거기에 은밀한 말장난이 더해지면서 닷이 건장한 제빵사로부터 느끼는 반복적인 기쁨을 알아볼 있다. 


빵은, 조지. The bread, George.

그러니까 말야, 조지. I mean the bread, George.

게다가 밤엔, 조지… And then in bed, George…

주물러 I mean he kneads me- (knead반죽하다/ need필요하다)

그러니까, 반죽처럼 말야, 조지. I mean like dough, George.


그러나 닷은 계속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노래 안에서 닷은 자신의 불안감을 드러내며 조지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결국 닷은 남자의 차이를 분명히 표현할 있게 된다.  


루이들도 있고 And there are Louis’s

조지들도 있지. And there are Georges-

루이들- Well, Louis’s

그리고 조지. And George.


남자 사이에서 닷이 내리는 선택은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인기있는(대중성을 지닌) 예술가와 예술, 혹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이다.  소수만 이해할 있으며 타협하지 않는 조지의 광적인 믿음은, 끈적하고 감상적인 루이의인기있는/대중적인popular’ 예술과 대비된다. 닷은 조지가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고 있고 그녀의 아픔은 반주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닷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루이의 크림빵을 한입 크게 베어물고선 떠나버린다. 

조지는 이제서야 홀로 남겨진다. 공원에 앉아 그동안 그렸던 스케치들을 훑어본다. 그림을 넘겨보며 조지는 그림 인물이 각각 어떤 성격일지 상상해본다. 그는 작품에 집중하려 하지만 결국엔 상실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 그녀가 찾는군. 좋아. Yes, she looks for me - good.

나를 찾아와 떠났는지 말해. Let her look for me to tell me why she left me - 

그럴줄은 알고 있었지만. As I always knew she would.


괴로운 자기 성찰을 시작으로, 손드하임의 가장 사랑스러운 발라드곡 하나로 꼽히면서 가슴깊이 예술가의 기질을 탐험하는 곡이 시작된다. 초반에서 등장했던 모든 음악적 장치들이 곡에서 어우러진다. 닷이 떠난 것에 대한 슬픔은 길게 지속되면서 온화하게 떨리는 음으로 표현된다. 그녀의 사랑을 결코 유지할 없을 거라는 믿음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조지의 상상속 세상을 이야기할 때마다 물처럼 흐르던 언더스코어가 리프라이즈된다. 자신의 상실에 대해 노래할때조차 조지는 강박적인 창작의 세계로 다시 빠져든다. 조지는 예술가를 이해해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닷에 대한 갈망을, “하지만 누군가 있다면- But if anybody could…” 이라는 가사의 높고 깔끔한 음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갈망과 이를 받쳐주는 코드를 시작으로 조지는 놀라운 창조성과 예술가의 뼈아픈 기쁨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조지는나머지 세상을/ 창문 너머로 지켜보는” -봐야만 하는 예술가의 고립된 외로움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마치 신처럼 위엄있게하늘을 설계한다고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즐거움도 암시하고 있다. 조지가모자를 끝내 한다는 강박적인 욕구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세부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예술가로서의 즐거움에) 대조되어 보여진다. 조지는 상충되는 삶의 요구들의 균형을 맞춰본다. 


하늘을 꾸며 Mapping out a sky,

마음가는 대로 하늘을 그려 What you feel like, planning a sky,

목소리가 다가오면 What you feel when voices that come

창문 너머로부터 Through the window

. Go

목소리들이 멀어져 사라질 때까지 Until they distance and die,

하늘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Until there's nothing but sky.


바깥 세상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마치 까치발을 짚은듯한창문Window” 음가에 얹혀 무단침입하는 보인다. 하지만 바로go” 꺼지면서멀어져 사라지다distance and die”에서 흐려지고 예술가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완전한 고요로 돌아간다.  손드하임은 여기서 음악적 제안과 의미의 이상적인 결합 형태를 발견했다. 순간은 인물에게 결정적인 순간이다. 세계 사이에서 그는 인간의 감정 세계에 끌리는 마음보다는 반드시 일궈내야만 하는 예술세계에 대한 마음이 우선일 거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반짝이는높이에서 (“높이height”light” 이루는 각운은 우연히 만들어진 아니다) 자신을 끌어내려 감각적인 어둠의 세계로 이끌 있는 여자는 예술가의 감정적 자기고립을 참고 받아들여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유감스럽지만 인정한다. 

곡에서는 조지의 점묘화법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작은 세밀한 부분들을 통해, 색색의 붓질을 통해, 단어 혹은 음을 통해,  예술가는 전체에 다가간다. 


모자를 알고 Studying the hat,

모자의 세계에 들어가 Entering the world of the hat,

모자의 세계를 헤치고 Reaching through the world of the hat

마치 창문처럼 Like a window, 

저기서 여기로 Back to this one from that.


인식/지각이라는 단위는 내적 창조성으로 통하는 창문의 역할을 하면서, 손드하임은 조심스레 세계의 균형을 잡는다.  작업실 창문 너머에서 손짓하는 세상은 사람의 온기와 우정의 세상이다. 다른쪽 창문 (조지에게 모자는 황홀한 상상의 세계로 닿을 있는 틈으로 인식할 있겠다) 주관적인 진리이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작곡가인 드뷔시와 라벨 풍의 반주를 통해 관객에게 조지의 모자 너머 세상이 환기된다. 유려한 반주가 반복되며 변조하는 것은 계속 변하며 어떤 형태로도 가둘 없는 예술작품의 진화를 표현하고 있다.

조지의 포부를 이야기할 손드하임이 사용하는 동사 - “연구하다”, “들어가다”, “도달하다 완벽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을 떠올리게 한다. 애인을 바라볼때조차 그는 사람과의 관계에 전념하기보다는 자신의 예술 세계로 빠져든다. 


얼굴을 연구하고 Studying a face,

그러기 위해 발짝 물러나지 Stepping back to look at a face

사이엔 공간이 생기지, 창문처럼 Leaves a little space in the way like a window,

하지만 보는 것은 But to see-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야. It’s the only way to see.


조지는 상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은 결코 사람과의 관계에 마음을 쏟을 없을 것임을 깨닫는다. 조지에게 가장 시급한 욕구는 인간 이외의 세상에 있고 충동은 결코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기에. 


네가 사랑하던 여인이 떠나면 And when the woman that you wanted goes,

어쩔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수 있겠지 You can say to yourself, “well, I give what I give.”

하지만 너를 기다려주지 않을 여인은 알고 있지But the woman who won't wait for you knows

네가 어떻게 살아가더라도 That, however you live,

너의 구석에는 언제나 There is a part of you always standing by,

하늘을 설계하고 Mapping out the sky,

모자를 끝내고 Finishing a hat…

모자를 시작하고 Starting on a hat…

끝낼 사람이 살고 있다는 Finishing a hat…


만족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되자 조지는 거의 어린아이가 된것처럼 기뻐하며 노래한다. “, 내가 모자를 만들었어look, I made a hat…/ 원래 없었던 곳에where are there never was a hat…" 조지는 공원에 홀로 남아있기 때문에, 노래를 들어줄 이는 그림의 대상인 강아지 뿐이다. 

트럼펫 소리가 들리고, 다른 인물들이 공원에 불려들어온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으며 그림 작업이 진척되고 있고 다양한 관계들이 복잡하게 얼키고설킨다는 것을 있다. 긴장감과 악의도 느껴진다. 캐릭터들은 자신의 주제곡 조각을 부르며, 서로를 경계하며 빙빙 도는 닷과 조지를 중심으로 분극화된다. 마침내 닷은 도전적으로 조지를 마주하고, 허리받이를 돌려 임신한 모습으로 분한다.

장면은 다시 작업실로 바뀐다. 연인의 결정적인 언쟁 장면을 연출할 곳이다. 닷의 사랑을 요구할 권리는 없지만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화가 잔뜩 조지는 닷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초상화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한다. 조지는 닷에게 자신을 추억할 거리는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로 충분할 거라고 주장한다. 

줄스와 이본이 도착하면서 이들의 말싸움은 잠시 방해를 받는다. 남자들이 조지의 그림을 논할 , 이본은 닷에게 질투를 느꼈던 것을 고백한다. 이본은 닷이 조지의 영감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아보지만 닷은 자신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줄 사람이 아니라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한다. 조지는 자신의 새로운 화법이 가지는 의의를 완고한 줄스에게 납득시키려 애쓴다. 여기서 조지와 손드하임의 방식이 비슷한 점을 다시한번 찾아볼 있다. 줄스는 조지의 그림에서 인물의 개성이 부족하다고 불평한다. “얼굴을 알아볼수조차 없잖아”. 손드하임 역시 이러한 방식을 차용했다. 캔버스와 뮤지컬 무대를 차지하는 캐릭터들은 사실주의 작품에서와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기본적인 것들은 암시되어 있지만 그들의 열정은 덧없다. 손드하임의 작품에서 캐릭터들이 이렇지는 않다. 작품이 개발되던 Playwrights Horizons에서의 워크샵 단계에서는 조지의 그림 인물들의 사연도 풍성했다. 라파인은 불협화음을 내는 현실적 존재들과 마지막 자세의 고요함이 대조를 이루길 바랐다. 그러나 관객은 곁가지 사연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중심 인물인 조지와 닷의 사연에 집중하기로 했다. 둘은 복잡한 심리로 얽혀있지만 다른 인물들은 캔버스로 녹아들었을 때에만 그림의 구성요소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손드하임이 캐릭터와 창작자를 분리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조지와 줄스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극작가인 라파인이 것이라고 부러 얘기하고 있기는 하나 조지가 무언가 독보적인 것을 만들겠다는 강박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에서 손드하임 자신의 좌절감과 믿음이 드러나고 있다. 손드하임에게 지배적인 강박은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 그리고 뮤지컬에 맞는 형태를 찾아주는 것이었다. 1막과 2막의 주인공들에게도 욕망이 있고, 이는 1막과 2막을 주제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20170809. to be continued



  1. 직역은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내봐’-여기선 draw가 ‘그리다’가 아닌 ‘이끌어내다’라는 뜻이고, draw라는 동사를 중의적으로 쓰기 위한 장치 [본문으로]

Joanne Gordon 저서 [Art Isn’t Easy] (1990) 

번역 : 서지은 (jieun.suh11@gmail.com)




뮤지컬노래를 멈추고  목소리를 찾다

: 일요일에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조지는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닷은 자신에게 색을 입힌다. 사람이 각기 무대 옆에서 균형을 이루며 있는 모습은 영혼과 육체의 전통적인 이분법에 생생한 극적인 형태를 준다. 조지는순수한 창조성이라는, 세속과는 매우 동떨어진 대기에서 살아가며 닷은육체의 풍성한 관능 자체이다. 닷이 옷이 더이상 맞지 않는다며 투덜거리는 대목에서는 그녀가 임신했음을 간접적으로 있다. 조지는 인정하려하지 않지만 닷의 관능이야말로 영감의 원천이다. 조지는 그녀를 그리고 그린다. 그의 천재성은 캔버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자궁에서도 살아있다. 손드하임은 자신을 조지와 동일시할 수는 있지만 닷을 냉대하지는 않는다.


조지가 색을 칠하는 행위를 반영하던 반주는 닷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뜯어보는 장면에서도 똑같이 흐른다. 눈썹 하나를 뽑을 때마다 종소리가 울린다. 차분하게, 조지가 바라는 집중력을 연습하려는가 하는 참에 닷은 고삐가 풀린 환상 속으로 뛰어든다. 생명력과 삶을 갈구하는 닷의 마음은 통통 튀는 캉캉 춤으로 번역되지만 거품은 금방 빠져버린다.  손드하임은 신나는 캉캉 리듬 뒤에 아주 느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듯한 리듬을 붙이는 것으로, 다정하게 닷에게 조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닷은 조지가 말했던색채와 대해 얘기한다. 단어가 등장하자 다시 초점은 조지에게 맞춰진다. 조지는 캔버스에 있는 인물 하나하나에 사랑을 담아 이야기를 하고, 닷은 다시 분노한다.


조지의 붓질을 반영하는 스타카토 음들이 다시 들리고, 조지는 매우 특별한 소리의 독백을 즐긴다. 마치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에서처럼, 독백은 문법이나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만 이어진 언어들이 흐르는 자유로운 구조를 지닌다. 곡은 조지가 캔버스에 칠하는 물감을 중심으로 조직되어있는데,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나열된 이름들 사이사이에 조지의 의식의 흐름이 배치되어 있다. 


Blue blue blue blue    파랑 파랑 파랑 파랑

Blue still sitting     파랑 아직도 앉아서

Red that perfume    빨강 그 향수

Blue all night    파랑 밤새도록

Blue-green the window shut    청록 창문은 닫혔어

Dut dut dut        덧 덧 덧

Dot Dot sitting     닷 닷 앉아있어

Dot Dot waiting      닷 닷 기다리고 있어

Dot Dot getting fat fat fat …     닷 닷이 뚱뚱해지고 있어 뚱뚱해지고…


조지는 닷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닷의 몸이 불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챘다. 조지는 닷이 무얼 필요로하는지 알지만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강렬한 욕구로부터 멀어질 없다. 조지는모자를 마무리해야만 한다.’ 열띤 창작과정과 작업실 안의 답답한 온도 모두를 가리켜 조지는 “It’s hot in here…/ Sunday / Color and light!”(“여긴 너무 더워… / 일요일 / 색채와 !”) 이라며, 작품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단어와 소리 공식으로 흥겹게 표현한다:


조지는 이제 완벽하게 집중하고 있다. 조지는 닷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는 캔버스 세상에 빠지고, 닷은 또다시 그의 편협성을 파고들려고 노력한다. 그의 그림은 노래로 표현되고, 닷의 당장의 걱정거리는 산문체의 대사로 표현된다. 조지는 자신이 창조해낸 세상을 보고 있다. 경이로운 색채와 음영의 세계. 조지의 지각도 색으로 변환된다. “It’s getting hot … 뜨거워지고 있어/ It’s getting orange…오렌지빛이 되고 있어”. 꿰뚫을 없는 조지의 눈빛을 이해한 닷은, 자신을 명의 사람이 아닌 그저 예술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studied like the light 빛처럼 연구되고 있어그러나 최면을 거는 듯한 조지의 마력을 거부하지는 못한다. 닷은 서서히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조지의 천재성을 흠모하는 자신을 인정한다. (손드하임은 가사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인물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한다. 닷은 산문체의 대사로 공상을 시작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시로 표현한다.) 조지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델에 사로잡혀있다. 닷의 분명한 나르시시즘에 당황하면서도 조지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예술가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멈춰서게 된다. 닷이 영감이 원천이라는 사실은 빛과 닷을 결합시킨 조지의 가사에서 드러난다. “But the way she catches light… 하지만 빛을 받는 그녀의 모습은…”

반짝이는 창작의 소리로 반주가 돌아오면, 연인은 마침내 감정적 교류를 이뤄낸다. 둘은 화음을 낸다.


조지

And the color of her hair 그녀의 머리 빛깔

I could look at her 나는 그녀를 바라볼 수 있어

Forever… 영원히


I could look at him 나는 그를 바라볼 수 있어

Forever… 영원히


목소리들의 융합은 관객과 캐릭터 모두에게 순간적인 감정이 표출되는 순간을 주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조지는 거의 바로 다시 점으로 가득한 자기의 세상에 빠지고, 폴리스 공연에 데려가기로 했던 닷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는다. 그들의 상반되는 시점은 가사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잠시 흔들리지만 다시 작업에서 위안을 찾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자문하는 조지는 처음에 닷과, 그녀를 실망시킨 자신의 죄책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심사숙고하는 과정에서 음악이 잠시 멈추자, 그는 진정 가장 중요한 결정, 색을 고르는 것에 집중력이 옮겨간다. 조지가 “Red 빨강 겨냥하면서 망설임의 시간은 지나간다. 


무대가 다시한번 섬으로 바뀌면 조지의 세상에 살고 있는 또다른 인물들이 관객들에게 소개된다. 공격적인 뱃사람과 그의 , 키득거리는 가게 점원 아가씨들(익살스럽게 셀레스트 1, 2라고 이름지어진), 그리고 조지의 어머니와 그녀의 보모 . 그들은 닷이 그녀의 애인인 만드는 루이와 함께 나타나자 흥분하며 수근거린다. 조지가 그림그리는 행동을 받쳐주는 스타카토 리듬 위주의 반주패턴처럼, 조지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뒷받침하는 소리 패턴들이 존재한다. 모든 소문과 비판은 구성 단위로 분리, 합쳐져서 음악적 캔버스를 만든다. 그런 식으로, 조지는 소리, 모양, , 빛의 포격을 받는다. 알아볼 있는 단위의 음악적 정체는, 화가의 팔레트에 있는 다양한  빛깔과 대응시킬 있다. 이러한테 주제적 패턴은 손드하임이 스위니 토드에서 사용했던 라이트모티프와 비슷하긴 하지만 훨씬 분열되어있고 인상주의적이다. 


20170711. to be continued



Joanne Gordon 저서 [Art Isn’t Easy] (1990)

번역 : 서지은 (jieun.suh11@gmail.com)




뮤지컬, 노래를 멈추고 목소리를 찾다
: 일요일에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손드하임의 뮤지컬 Merrily We Roll Along[각주:1]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한 실패로 끝났으니, 그가 예측불가능한 브로드웨이에서 영원히 떼고 물러난다고 선언했어도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확실히 멜로디가 있으며 엄연히 감정에 와닿는 듣기 쉬운 음악[각주:2] 썼음에도 몇몇 비평가들은 작품이너무 복잡하다 치부해버렸다. ‘냉철한 지성미라는 손드하임의 평판 때문에 뉴욕 관객들은 뮤지컬 Merrily 매력과 따스함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같다. 이러한 비평가들의 고정관념에 더해 Sweeney Todd(스위니 토드) 뉴욕시를 비롯한 여타 지역 오페라단 레퍼토리 목록에 추가되면서 손드하임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뮤지컬계를 떠나 보조금을 받으며 일하는 희박한 오페라의 세계로 영영 가버렸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손드하임의 반응은 예상대로 예상 밖이었다. 

대형 브로드웨이 프러덕션의 죽기 아니면 살기식 제작에 환멸을 느낀 손드하임은 해롤드 프린스와의 15 파트너쉽을 끊고, 앞으로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천천히 발전시키는 과정을 밟는 워크샵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연극 Twelve Dreams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식 환타지), Table Settings (가정불화에 관한 색다른 풍자) 등을 극작가이자, 작곡가 윌리엄 핀의 성공적인 오프브로드웨이 작품 March of the Falsettos 연출한 제임스 라파인과 손잡은 손드하임은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이하 Sunday) 개발하기 시작한다. 압박이 느껴지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말이다. 

둘에게 영감을 것은 화가 조르주 쇠라의 삶과 작품으로, 특히 그의 초대형 대작인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이다. 쇠라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1859년에 태어나 1891년에 세상을 떴다. 프랑스 신인상파로 분류되는 쇠라는점묘법으로 불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채색 기술을 완성시켰다. 쇠라는 굉장히 비밀스러운 사람이었다. 일기를 쓰지도 않았고, 남아있는 안되는 편지마저 그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별로 없다. 아주 드물게 남겨둔 자화상에서조차 그는 뒷모습 뿐이다. 혹자는 쇠라의 친구들조차 쇠라가 동거하던 여인에 대해 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독창적인 예술적 표현방식을 추구하는 짧은 인생을 바친 쇠라는 서른한살의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살아생전 작품을 하나도 팔지 못한 . 

당대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쇠라 역시 색과 빛에 대해서 가장 중요하게 고민하였다. 그러나 모네와 르누아르같은 화가들은 그의 작품이 너무 극단적이라며 쇠라의 화풍을 인상파로 분류하기를 거부했다. 쇠라는 자신의 엄격한 과학적 의향에 맞추기 위해 인상파의 감정적 주관주의를 이용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자연에 가까운 정확한 색을 찾으려 애쓰는 동안 쇠라는 현상을 주요 원색으로 분석하였다. 그런 쇠라는 캔버스에 아주 작은 상호 보완적인 원색을 점으로 칠했다. 보는 사람들의 눈이 근접한 색상들을 직접 섞기를 바라면서.  쇠라의 그림을 현미경으로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는 단순히 색을 나란히 붓질한 것이 아니라 원색과 등화색(等和色-2원색을 등분 혼합한 ) 여러 겹으로 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는 이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시각적 과정은 놀라운 생동감으로 빛나는 캔버스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쇠라가 색을 응용하는 데에만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인상파 작품처럼 찰나의 효과를 내는 것과 달리 쇠라의 작품은 매우 엄격히, 거의 수학적으로 설계되었다. 그의 작품은 형태에 대한 그의 집착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는 어떤 형태는 확고한 정서적, 미학적 내포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강렬한 수직의 나무들은 수평적 그림자와 대비되어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배경에 있는 사람의 모습들과 균형을 이루게 된다. 

쇠라는 기념비적인 대작 - 캔버스는 무려 가로 3m, 세로 2m 된다- 위하여 야외에서 수많은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는 작업실로 돌아와 고통스러운 채색 과정을 계속했다. 비교적 기계적이면서도 상당히 노동에 가까운 과정이었다. 그랑자트 섬은 세느강 가운데 있는 작은 조각일 뿐이었지만 당시엔 노동계급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다. 쇠라는 작품 안에 부유층 인물도 등장시켜 파리지앵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구성적 복잡성을 설명하면서 미술사 교수 노버트 린턴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인상파에게서 모자랐던 기념비성이 가득한 작품이다. 구성에 있어 좌-우의 움직임은 그림의 공간감을 강조하고 있고, 이에 대응하듯 명확히 다른 공간에 모여있는 인물들이 거의 모두 왼쪽을 향해 있다. 색이 대비되어있고, 직선이 곡선을 거스른다. 공간감과 신체적 존재감이 충분하나 작품 전체적으로는 벽화의 느낌이 강하다. 

작품은 차가운 고요에 물든듯하지만 명백한 생명력으로 우글거린다. 놀라우면서도  아리송한 그림으로부터 손드하임과 라파인은 용감하게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했다. 

Sunday 예술적 창조성의 본질에 주제적 초점을 두고 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떻게 예술을 하는가? 그리고 가장 의미심장한 질문 :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 세상과 타인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모든 예술가의 삶을 이해하는 이러한 주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작품은 손드하임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자전적이라 있다. Company에서 주인공 로버트와 손드하임을 비교하며 보람이 없었던 것과는 다르게, 손드하임과 조지의 동일시는 예술가의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예술가의 고충을 드러낸다. Sunday 예술가의 자기 표출을 매우 세련된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창조성의 본질, 그리고 예술과 삶이 지닌 모순적인 요구들은 손드하임이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지점이다. Sunday 창작하면서 손드하임은 소박해보이는 비서술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며 가장 개인적인 뮤지컬을 창작하는 자유를 누렸다.

손드하임은 쇠라가 겪는 감정적인 혼란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예술적 기법의 동질성은 인정하고 있다. 무대를 구성할 손드하임은 그림의 영역에서 쇠라가 구현했던 근면성실한 집중력을 보인다. 쇠라가 바랐던 과학적 정확성은, 손드하임에 있어 음악과 수학의 관계에 반영되어있다. 


‘음악은 개수가 한정된 변수들의 구성이다. 언어는 가능성이 무한하지만 온음계 음악은 그렇지 않다. 이미 알고 있는 병력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온음계를 구성하는 것은 확연한 수학적 기반이 있다. 음계간의 관계, 불협화음이 화음을 이루기 위한 필요성 등은 수학적 원칙을 따른다. 옥타브를 보면 그것은 그저 두 개의 ‘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여덟개가 있다. 거의 무의식적이지만, 음악을 공부한다면 이런 것들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언어이다. 거의 컴퓨터 전문 용어에 가깝다.’


쇠라처럼 손드하임 역시 자신의 작품을 세분화한다. 구성 요소별로 나눈 단위들을 다시 합쳐 음악적 전체를 만드는 것이다. “인물을 위한 곡을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손드하임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늘 모티프로 시작합니다. 항상 말이죠. 밀튼 배빗 교수님은 길게 이어지는 음악적 발전기술을 가르쳐주실 때 작은 음악적 아이디어들이 큰 구조적 형태로 확장되는 거라고 가르치고 훈련시켰죠. 중요한 건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가장 커다란 걸 끌어내는 거예요. 그 반대가 아니고요. 나는 그것을 예술의 원칙으로 여겨 왔어요. 특히 음악에 있어서 바흐의 푸가를 보면 마치 거대한 성당 같은데 그건 아주 작은 모티프들로 이루어져 있죠. 나는 늘 그렇게 작곡해왔고 그래서 내가 매력을 느끼는 뮤지컬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어요. 인물에게 모티프를 하나씩 주고, 그 인물과 함께 모티프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런 작품들에 나는 매력을 느낍니다. 


음표, 단어, 리듬 패턴은 손드하임이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 단위이다. 선택 하나하나가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무수한 작은 선택들을 동반하기 때문에, 손드하임은 예술가가 갑자기 찾아오는 영감을 받아 내적 천재성을 발휘해서 즉흥적으로 작업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지겨울 정도로 느릿하고 꾸준히 체계적으로 공들이는 쇠라의 작업방식이야말로 손드하임이 선뜻 자신과 닮았다고 말할 있는 방식이다. 손드하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쇠라는) 그 캔버스에 수천 수만개의 점을 찍어놓았어요. 그 점 하나하나가 독립된 선택의 결과물이었고요. 혹자는 오백만개의 독립적인 선택들이라고도 하죠. 

그리고 그게 바로 예술입니다. 나흘동안 모자에 달린 꽃에 공을 들인 후에, 열흘동안 모자에 공들입니다. 그리고 나면 작업해야할 모자들이 스무개가 더 넘게 남았죠. 그러면 모든 모자들은 어떤 패턴에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얼굴에 대한 작업들이 시작되죠. 이건…그냥…아주 힘든… 일입니다. 


이러한 면이 바로 손드하임이 극으로 만들고자 하는 창작의 부분이다: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엄격하고, 매력없고, 대부분 단조롭기만 헌신. 

쇠라가 강조하는 형식에 대한 부분은 정교하게 짜여진 손드하임의 뮤지컬의 형태에서 보여지고 있다: 어느것도 무작위인 것은 없다; 임의적인것도 없다; 세부 사항들은 전체적인 음악 작곡에 필수적이다. 예술가들의 기술은 나아가 비교해볼 있다.  Sunday, 뉴욕타임즈 비평글에서 프랭크 리치가 기술한 바와같이 진정한 현대적 뮤지컬이다. 작품에는 임시적으로라도 이어진 선형적 플롯이 없다. 기존의 이야기 구조와는 달리, 인물들의 생각의 상태 변화를 따라 내러티브 구조가 집중된다. 사건은 미학적 결정보다 중요하다. 

내러티브의 중요성과 대안적 구조에 대한 탐험 사이의 문제는 당연히 작품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중요하게 여겨졌었다. 처음에 손드하임은 전혀 내러티브를 만들지 않았었다. 음악적 주제와 변주 자체에 대한 무대화를 목표로 구조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의파가니니의 주제에 대한 변주 들을 때마다 나는 먹먹해져요. 그걸 무대로 옮겨보면 재밌을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1막에서 쇠라의 작품을 이용해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자고 결정하고 나는 굉장히 신나 있었어요. 2막에서는 변주의 나열이거나 그림에 대한 여러 관점들을 얘기하는 식으로 알았거든요.” 아주 흥미로웠지만 형태는 바뀌어야 했다.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는 형태 자체에 대한 흥미만으로는 부족하며, 이야기가 어떻게든 이어지는 것이 극적인 효과를 위해 필요하다고 라파인이 주장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손드하임은 음악, 가사, 캐릭터까지 연합적인 패턴으로 사용하였고,  관객의 통찰을 통해서만 진가를 완전히 알아볼 있도록 설계했으니 이루고자 했던 목표에 상당히 많이 근접했다고 있다.

손드하임의 음표 하나하나는 쇠라의 하나하나와 동등한 음악적 존재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기술에 대한 독자성은 손드하임 본인이 기술하고 있다: “쇠라는 음악가가 음계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처럼 색상환을 가지고 실험했습니다. 그는 딸림화음 혹은 으뜸화음 계열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색을 사용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유사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림으로부터 시작했지만 내가 쇠라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세상에, 이건 음악이네.’” 멀리서 보면 쇠라의 그림은 자연과 인류가 정리된 세상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조화로운 이상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살펴보면 예술가 기술의 추상적 엄격성이 분명해진다. Sunday 정밀히 분석해보면 수만개의 숨겨진 단위들이 패턴을 이루며 증대된 전체가 된다. 소리, , 감정, 그리고 미학적 아름다움은 각기 자율적인 중요성을 지니면서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통합된다. 

그러나 19세기 화가와 20세기 작곡/작사가의 가장 중요한 관련성은 각기 예술적 완벽을 추구하는 헌신에 있다. 뮤지컬의 감정적 서브텍스트는 이러한 종류의 광신에 따르는 고립감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Sunday 지루한 분류화를 깨부수려는 손드하임의 의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재정의할 있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손드하임의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예술을 통해 미학적인 진실을 재발견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뮤지컬은 주제를 극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제 자체라고 말할 있겠다. 

1막은 쇠라의 역작을 창작하는 과정을 그린다. 화가의 세상을 이루는 다양한 인물들이 관객에게 소개된다. 그러나 소개 과정들은 조각난채 스치듯 보여진다. 예술가가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그의 입장에서 사용 목적에 따라 보여지고 관객은 화가의 시선을 통해 그들을 받아들인다. 1막의 등장인물들은 조지의 예술적인 노력에 순간적인 영감을 주거나 방해하는, 색채와 빛의 배열들이다. 극적인 효과보다는 구성적인 중요성을 띤다. 화가의 애인과 어머니만이 예술가의 의식에 진정한 영향을 미친다. 

막이 오르면 무대가 보인다. 페이지를 무대적인 이미지로 변환시킨 것이다. 수염이 인물이 무대 앞쪽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그의 현실의 요소들이 기적적으로 무대에 구체화된다. 상승 아르페지오 여러개를 따라 (지속적으로 반복될 음악적 모티프) 하얀 세상은 사라지고 조지의 세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르페지오는 화가의 팔레트와 상관관계가 있는 음악적 목표물이다; 주요삼화음은 쇠라의 원색들에 대한 손드하임의 화음적 유사체가 된다. 쇠라가 색을 점으로 원자화했듯, 손드하임은 그의 가사와 음악적 주제들을 세분화했다. 예술가 모두 미학적, 감정적 음영과 농도를 얻어내기 위해 자신들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다양하게 결합하여 나란히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쇠라가 순수색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유로 손드하임은 미묘한 전반적인 인상을 보여주는 화음과 다이어토닉 코드 무리를 사용했다. 손드하임은 : “음악을 그림처럼 열린 상태로 순수하게 두고 반짝임을 주려고 했어요. 코드 무리들도 만지작거리고 있었어요, 쇠라가 그림에서 서로 다른 색의 점들을 병치시킨 것처럼 코드 무리들도 비슷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뮤지컬을 여는, 분명히 연결이 되지 않는 단어들은 실은 조지의 미학적인 신조이고 예술가의 삶과 뮤지컬의 구조를 이루는 주제적인 뼈대이다:


White. A blank page or canvas. 흰, 빈 페이지 혹은 캔버스.

The challenge: bring order to the whole. 도전 : 전체적인 질서를 가져올 것.

Through design. 설계를 통해.

Composition. 구성.

Tension. 긴장.

Balance. 균형.

Light. 빛.

And harmony. 그리고 조화. 


단어와 함께 반주에서는 모티프가 꾸며진다. 손드하임 악보의 단위와 조지 세상의 요소들이 짝을 이루게 된다. 조지가 자신의 세상을 이루는 요소들을 스케치하거나 지우는 동안 (조지의 기분에 따라 나무가 나타났다 사라질 것이다), 손드하임도 음악을 조종한다. 아르페지오는 명확하고 단순하다. 그것이 반복되는 동안 어떤 명확한, 제어된 불협화음이 소개된다. 음들은 차츰 복잡한 패턴으로, 조지의설계 대한 요구와 일치되도록 맞춰진다. “구성에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마지막 음은균형 머문다. 암시된 불협화음이 궁극적으로 해결되면서, 예술가가조화 강조할 음악이 주제로 합쳐진다. 

극의 부분 군데군데에서 음악의 극적인 계획이 세워진다. 우리는 예술가의 세상으로 빨려들려온다. 모든것이 가능하다. 세상은 구체화되었다가도 사라질 수도 있다.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바뀌는 그림과, 전반적인 인상을 보여주는 손드하임의 음악이 가진 힘으로 인해 현실이 만들어진다. 음악의 표현 방식은,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을 떠올리게 하는데,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쇠라의 세상이 가진 마법과 거기에 흐르는 모순 전부를 넌지시 비춘다. 손드하임의 의도는 황홀한  왕국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관객이 떠나기 싫어하는, 이상하고, 예측불가능하고 놀라운 장소를.

자신의 세상을 이루는 기본 요소들이 갖춰지면, 조지는 애인 닷을 공원으로 안내해 데려온다. 장면에서는 둘의 상충되는 집착 친밀도가 여러 각도로 보여진다. (점이라는 뜻을 지닌 그녀의 이름은 조지의 집착을 너무 문자 그대로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맑고 쾌활한 사람이다. 연인이 놀리듯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 닷은 조지가 하는 작업의 중심일지는 몰라도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심은 아니라는 것이 명확히 보인다. 닷은 패션에 관심이 있고, 조지는 물에 비친 빛이 그녀에게 어떻게 반사되는지에 관심이 있다. 앞머리에서 조지의 단어들 사이에 간간이 끼어드는 아르페지오는 장면에서도 조지의 열광적인 스케치를 반영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조지가 스케치해둔 나무를 지우자 아르페지오와 함께 무대에서도 나무가 사라진다. 조지가 배를 불러내자 모형이 무대 수평선에 나타나면서 아르페지오가 들린다. 많은 나무들이 무대에 세워지면서 다른 아르페지오. ( 아르페지오는 음악의 선율적 발전을 이루지 않고 자체로 완성된 상태로 매달려있다. 화가의 그림에 대항하는 음악적 상대로서)

이른 아침의 고요함이 노인(나중에 조지의 어머니임이 드러난다) 보모에 의해 깨진 이후, 초점이 다시 닷에게 집중되면서 새롭고 독특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소개된다. 조지는 일에 빠져있고 닷은 그런 조지의 눈길을 끌어보려 용맹스럽게 애쓴다. 닷은 예술가 조지의 작품의 분명한 중심이 되는 것을 즐기면서도 정적인 지루함을 참지 못한다. 닷의 불만을 드러내기 위해 손드하임은 스타카토 점묘법을 사용하는데, 조지의 화법과 통제불능 상태인 닷의 짜증을 나타내고 있다. 조지가 닷을 색색의 점들로 원자화하는 동안 닷은 불편을 유발하는 요소들을 또박또박 말한다:


A trickle of sweat. 땀이 흐르네

The back of the head. 뒷목을 타고

He always does this. 그는 늘 이래

Now the foot is dead. 발이 저려와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뚝뚝 끊어진 구절들과 이어지지 않는 음들로 닷의 조바심을 그리고 있지만 조지를 향한 마음이 커지면서 그녀의 질투심은 늘어진 표현들을 찾는다. 소리와 색의 단위들이 반복되면서, 가사의 주요 구절들이 반복, 강조된다. 


Artists are bizzare. Fixed. Cold. 예술가들은 이상해,딱딱하고,차가워. 

That’s you, George, you’re bizzare. Fixed. Cold 당신 말야, 조지,이상해,딱딱하고,차가워

I like that in a man. Fixed. Cold. 그런 남자들이 좋긴 해, 이상하고 차가운.


감정을 자극하는 함축된 말들은 손드하임의 의도대로 강조되는데, ‘이상해차가워라는 말들이 확실하게 튀어 보이도록 굉장히 낮은 음에 실어둔 것이다. 이제 발전될 주제는 조지의 무관심함이다. 

닷은 조지더러 내성적이라면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거의 동시에 그런 모습이 매력적이라며 노래하는데 그런 모습에서 닷의 모순적인 성격이 보인다. 조지의 쌀쌀맞은 무심함과 닷의 물리적인 뜨거움이 분명히 병치되어 보여진다. 조지는 그늘에 앉아있고 닷은 햇빛을 받고 있다. 조지는 차분하고 몰두하고 있다; 닷의 뒤로 땀이 흐르고 그녀는 빛나고 있다. 닷은 음악적, 감정적 팔레트에서 따스한 톤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 ‘ 여긴 정말 너무 더워!’라며 그녀가 길게 내지르는 비브라토에서, 땡볕에서 포즈를 취해야만 하는 가혹함을 느낄 있다. 

조지의 손이 종이 여기저기를 날아다니자 손드하임은 닷을 숨조차 쉬기 힘든 말도 안되게 노래구절로 내몬다. 화가의 스타일과 인물의 불만과 장면의 시각적 충격이 놀랍게 얼키고설킨 부분이다. 


There are worse things 뭐 더 나쁜 일도 있을 수 있지

Than staring at the water 물을 내다보는 것보다

As you’re posing for a picture 모델로 포즈를 취하면서

Being painted by your lover 애인이 그려주는 그림 속

In the middle of the summer 한 여름 뙤약볕에

On an island in the river on a Sunday 강에 있는 섬에서 일요일에


손드하임의 전작 뮤지컬컴퍼니에서 신부(에이미) 폭발하듯 불렀던 오늘 결혼 안해라는 곡이 생각나는 기술이다. 모두에서 손드하임은 불만이 극에 달한 인물의 대화가 통제할 없는 수준으로 어긋나서 격렬한 분개로 터져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갑자기 조지가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고, 닷이 마치 그의 창조적 울타리를 넘어선듯 보인다. 그러나 조지는 닷의 드레스 주름을 바로잡을 , 그녀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는다. 분노를 꾹꾹 누르는 닷의 마음을 솔로 첼로 반주가 보여주고 있다. 


닷:

The petticoat’s wet, 속치마가 다 젖었어

Which adds to the weight. 너무 무겁다

The sun is blinding. 햇빛에 눈이 멀겠어

(눈을 감는다)

All right, concentrate… 좋아, 집중해…


조지:

Eyes open, please. 눈 뜨세요.


닷: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조지와 함께 공원에서 일요일에…


조지:

Look out at the water. Not at me. 물가를 바라봐. 나 말고.


세밀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신경쓰는 손드하임의 작업방식을 여기서 분명하게 있다.  인물의 동작과 반응까지도 가사에 명시되어있다. 그리고 음악은 인물들의 억눌린 생각들을 보여주는 감정적 서브텍스트를 전달하고 있다. 

조지는 방정맞은 모델에게 집중력을 요구하고, 마침내 그녀는 이해한다. 그녀의 생각과 감정들이 자유로이 떠다니는 와중에, 유쾌한 무대적 술책을 통해 신체적인 고요함이 그려진다. 무겁고 장식 가득한 닷의 드레스가 열리면서 닷이 탈출하는 것이다. 닷이 빠져나온 드레스는 다시 닫힌다. 닷이 레이스 달린 속옷만 입은 무대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동안 조지는 자신이 그리던 모델이 환상속으로 탈출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계속 스케치를 뿐이다. 앞서 절제된 리듬 패턴과 상반되는 피지카토에 맞춰 닷은 신나서 뛰어다닌다. 손드하임 특유의 재치넘치는 가사에서 불멸에 대한 그녀의 갈망이 드러난다. 


Well, if you want bread 배도 부르고

And respect 존경과

And attention 관심도

Not to say connection 연줄도 갖고 싶다면

Modelling’s no profession 모델일은 할게 못돼.


하지만 닷은 조지의 천재성을 알고 존경하고 있다. 바로 거기서부터 그녀의 열정이 흘러나온다. 리듬이 바뀌면서 길고 낭만적인 구절에 닷이 자신의 동경을 얹어 부르는 데서 있다. 


All it has to be is good. 뛰어나기만 하면 돼.

And George, you’re good, 조지 당신은 뛰어나.

You’re really good. 정말이야. 


조지의 예술을 흠모하는 마음을, 닷은 스스로 깨닫는다. 조지의 놀라운 그림세계를 보여주려는듯 물결이 치는듯한 부드러운 코드로 반주되는 화음이 바뀌면서 닷이 노래한다. : “그치만 무엇보다도, / 당신의 그림이 좋아…” 잔물결이 이는듯한 색채는 아름다우면서도 불안하다. 조지 안의 예술가를, 닷은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있다. 

곡에서 관객은 천상의 세계로 빨려들게 되고, 예술가의 집착과 모델의 불만과 매력에 대해 알게 된다. 아주 정확하고 경제적으로. 무대와 관객간의 감정이입 계약서가 체결되었고, 관객은 이제 쇠라, 손드하임, 그리고 라파인이 창조한 세계를 거닐 준비가 되었다. 

공원 구석구석에서 크고작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동안, 음악은 광란하듯 돌아간다. 많은 , 질감과 형태를 덧입히면서. 음악적, 시각적 아수라장이 극에 달할때 즈음 쇠라의 초기작 하나인아스니에르의 물놀이 활인화로 표현되어 무대에 등장한다. 조지가 팔을 뻗어 그림을 얼리기 전까지 그림속 인물들은 시끄럽게 상스러운 소리를 쏟아낸다. 공원이었던 공간은 순간 기적처럼 미술관으로 변한다. 어느정도 성공은 했지만 뛰어나지는 않은 예술가인 줄스가 부인 이본과 함께 걸어들어와 그림 앞에 선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오스티나토[각주:3] 반주 위에, 줄스와 이본 부부는 그림에 너무 깊이가 없다는 감상을 늘어놓는다. 이들이 그림을 상대로 보내는 안일한 웃음, 냉소적인 격언은 손드하임 본인도 받았던 평가이다. 


줄스:

It has no presence. 존재감이 없어


이본:

No passion. 열정도 없어


줄스:

No life…. 생동감도.


이본:

So drab, so cold. 생기 없고, 너무 차가워.


줄스:

And so controlled 너무 통제되었어. 


함께:

No life. 생동감이 없어. 


줄스:

His touch is too deliberate, somehow…. 붓질이 어쩐지 너무 의도적이야…

All mind, no heart. 생각 뿐이지, 감정이 없어

No life in his art. 그의 예술에는 생명력이 없어


이본:

No life in his life- 그의 삶에도 생명력이 없어


함께:

No- Life. 없 - 어. 


예술가의 지성과 복잡성을 묵살하는 애정어린 말들이 담긴 개요서(노래 No Life), 손드하임은 자신을 시기해서 욕하던 이들을 교묘히 풍자하고 자신만의 미학적 기준을 세운다. 창작자와 인물의 정체는 확실하다. 트집잡는 말들은 불쾌한 인상으로 마무리되며 인물들의 심술궂은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장면의 마지막 한마디를 할 수 있는 기회 비평가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활인화 그림이 무대 밖으로 퇴장하기 , 그림 안에 있던 소년이 야유를 보내는 소리가 장면의 진짜 마지막이다. 

조지는 작업실로 돌아오고, 작업중인그랑자트섬의 일요일 부분부분 보이는 커다란 배경막 뒤에서 열광적으로 작업한다. 역시 바쁘다. 조지가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리듬에 맞춰 닷은 쇠라의 또다른 작품 La Poudreuse( 바르는 여인) 생각나게 하는 모습으로 화장대에 앉아 여기저기에 분을 바르고 있다. 손드하임은 반주에 피지카토 리듬을 넣어 조지와 닷의 점묘법 기술을 반영하고 있다. 조지의 열정이 점점 커지면서 손드하임의 가사들은 뚝뚝 끊어진다. 한점 한점에 사로잡힌 예술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캔버스에 색을 입히면서 색의 이름을 얘기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맥주도 모금 마신다. 조지는 이렇게 강렬한 창조의 황홀경에 빠져간다. 조지가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내적 고요와 균형을 이룬다. 그는색채와 이외에 어떤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만의 마법세계에 들어간 것이다. 


20170627. to be continued



  1.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와 함께 작업했던 시기의 마지막 작품이자 손드하임이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가있다’고 인정하는 유일한 작품으로, 작곡가, 극작가, 소설가를 꿈꾸는 세 친구가 등장하는 뮤지컬이다. 이야기는 197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시간을 거스르며 진행되는데, 초연때는 관객들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걸 너무 어려워해서 결국엔 캐릭터 이름을 박아넣은 티셔츠를 입혀 공연을 해야 했다고. (역주) [본문으로]
  2. 손드하임은 전작들에서 ‘흥얼거릴만한 멜로디가 없다’는 평가를 자주 받았었다. Merrily에는 이를 비꼬는 장면이 살짝 들어가 있는데, 다큐멘터리 Six by Sondheim에서는 손드하임 본인이 프로듀서로 깜짝 연기를 선보이며 Darren Criss가 연기한 어린 작곡가 프랭크에게 그 대사를 한다. (역주) [본문으로]
  3. 어떤 일정한 음형(音型)을 동일 성부(聲部)에서 반복하는 것 [본문으로]

+ Recent posts